The Godfather


영화든 드라마든 영상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한 번 보고 그 안에 담긴 모든 美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럴만큼 예민한 눈을, 감성을 지니지 못한 탓에 몇번이고 다시 보곤한다. 물론 단순히 보고 즐기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 미처 발견 못했던 작품의 장점이나 의도를 새로 발견해 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젠가 꼭 한 번 보아야겠다고 오래 전부터 작정은 했지만, 그 압도적인 러닝타임-3편 합해 10시간에 가까운-에 겁먹고 차마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얼마 전 주말 남는 시간에 3편을 내리 보았다. 그 다음 주말, 없는 시간을 쪼개 또 3편을 내리 보았다. 그리고, 주 중 내내 돌려보고, 또 지금 보고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과연 '즐기'고는 있었는지 뭘 '발견'하긴했는지 통 모르겠다. 영화에 몰입한 탓인지, 압도된 탓인지.

전공 시간에 이탈리아 인들의 이민사에 대해 간략하게 배운 바가 있다. 식민지와 건국시기 초기에 아예 'The Whites'로 취급도 받지 못하던 그들이 왜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타국 땅에서까지 뭉치게 되었는지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해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1편에서 끝난다. 미국의 이탈리아인 이민자들의 문화와 정서를 묘사한 게 1편이었다면, 2편과 3편은 그 이후의 일-마이클 꼴리오네의 이야기-을 건조하게 이야기한다.

영화가 풍기는 품위와 멋이 어디서 오는 건지는,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아직도 정확히 짚어내질 못하겠다. 격조를 잃지 않으면서도- 혹은 그 '격조'로 포장된 채- 무자비하게 자행되는 마초적 폭력, 그리고 끈끈한 가족애의 정서 정도가 그 답이 아닐까. 그러나 시리즈의 매력은 그 '품위'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서서히 몰락하고 까발려지는 그 '격조'-혹은 '위선'를 담담히 그려내는 데 있다하는 게 옳다.

앞선 두편에서는  그 '격조'가 만들어지는 모습-비토 꼴리오네의 일생, 그리고 그 '격조의 시대'의 끝-그의 죽음이 묘사된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격조'의 가면은 하나씩 벗겨지고, 얕아진다. 마지막 편의 그 유명한 훈장서임식 장면에서 그의 아들 마이클은 그 '격조'를 다시 완성-비록 살인장면을 교차해 보여주며 그 격조가 철저한 '가식'임을 말하지만-시키고, 1편에서 묘사되었던 '축제'의 모습 역시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모래 위의 성이란 것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영화는 잃어버린 순수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마이클의 시실리 아내, 아폴로니아는 그 첫번째 상징이다. 그녀가 조직원의 배신으로 인해 난데없이 폭사하고나서 마이클은 미국으로 돌아오고, 변한다. 시리즈 말미에 이르러 순수의 또다른 상징이라 할 만한 그의 딸이 희생될 때, 아폴로니아와 함께 추던 왈츠 장면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그가 모든 걸 희생해가면서까지, 폭력에 가면을 씌워서라도 지켜내려 했던 마지막 '순수'의 가치는 그렇게 완전히 파괴된다.

시리즈의 마지막 엔딩을 보고 막막함에 얼마간 숨이 막혔다. 마침내 처참한 몰골로 드러나는 무너진 격조와 벗겨진 가식의 결말이, 또 지켜내려 했던 모든 것을 끝내 잃고 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너무나 쓸쓸하고 담담해서. 정말 몇 초간 멍 때리고 있었다.

아직도 온전히 감상해내려면 멀었다. 오늘도 한 번 더 보고 자련다. 아니, 보다가 자겠지만.

by Dandelion | 2008/11/13 02:26 | High Fidelity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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