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시대

우석훈은 저서 '괴물의 탄생'에서 건설투기자본이 근간을 형성한 우리 경제의 구조적 기괴함에 대해 짚은 바 있다. '재개발'은 그같은 경제구조가 직접적으로 작용한 현상이다. '건설'로 목돈을 만들어보겠다는 지주들과 건설회사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권력의 결탁. 

즈이 땅 가지고 돈 벌어보겠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안중에는 없는 게 문제다. 그 이기주의가, 이 땅에 굳건히 자리한 투기자본의 야만적 본질이다. 같은 하늘 아래 누군가가 재개발로 번 돈으로 산 72억이 넘는 현대판 성채에서 사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푼돈 받고 집에서 내쫓긴다.  

사람이 죽었다. 철거민과 경찰 합해 6명. 당연히, 재개발로 인해 얻는 이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들이다. 철거민들은 보상금 1400만원을 가지고 10년을 넘게 살아오던 집에서, 상가에서 나가길 강요당했다. 1400만원이라. 학교 근처 원룸도 계약금 1000만원이 넘어가는데. 애꿎게 죽은 경찰은 또 뭔가. 경찰이 되고자 했을 땐 로보캅 닮은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죽을 거란 생각은 미처 못했을 거다. '순직'이라? 글쎄, 내 알기론 일하다 죽는게 '순직'의 정의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이 과연 '경찰'이 해야 마땅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푸코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간접화된 경제권력의 폭력과 그 저항 사이에 치어죽은 희생양일 뿐이다. 그 불행한 죽음마저 저들은 철거민들의 '테러'를 부각시키기 위한 이야깃거리로 쓰고 있으니. 

20세기 동북아를 지배한 정경유착의 그림자는 이제 더이상 '유착'에 머무르지 않는다. 놈현 말따나마 권력 자체가 시장에 완전히 넘어갔다. 정치와 경제-경제라 부르기도 역겹다, 그저 돈-의 영역구분은 이제 무의미하다. 문명이 시작된 이래 진행된 정치와 경제의 영역 구분이 다시 흐릿해져간다.
곧, 야만이다.

by Dandelion | 2009/01/23 04:09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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